영화 미안해요, 리키와 켄 로치 감독의 연출

1970년 11월 13일은 실로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날입니다. 당일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청년 전태일의 희생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근무하는 저임금 노동자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참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시장에서 물류센터로, 재단사에서 상하차 노동자로, 그 장소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지요.

한편,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의 노동현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영국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그로 인해 무너져 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은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켄 로치 감독 특유의 연출이 참 잘 어울리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평소 노동환경과 사회구조적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을 봐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와 켄 로치 감독의 연출

1.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줄거리

영화-미안해요-리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가족을 위해 일하는 리키의 상황이 모순적으로도 가족의 불화를 야기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입니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와 그 속의 노동환경이 노동자를 힘없는 약자로 전락시킨다는 점을 시사하는데요. 영화에서 리키는 택배기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나갑니다. 리키는 성실하게 일을 하지만, 정작 택배회사는 리키를 개인사업자로 취급하며 기본적인 노동환경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본 리키의 모습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바쁘게 변해가는 자본주의 사회 속 하나의 부품으로 사용될 뿐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정말 지극히 평범합니다. 평소에도 심플한 연출을 즐겨 사용하는 켄 로치 감독 특유의 스타일까지 더해져서 더 그렇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영화 구성과 연출이 보는 이로 하여금 본인의 생각이 개입될 여지를 주는 것 같아서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물류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줄거리였습니다. 한국의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노동약자가 참 많습니다. 택배 상하차, 쿠팡 물류센터 직원, 청소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져 있을 뿐이지요.

2. 켄 로치 감독의 연출과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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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무려 2번이나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은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중에게 보여주는 연출을 선호합니다. 단조로운 줄거리와 평범한 인물을 통해 관객이 사회적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켄 로치 감독이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는 것 역시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개인적으로 켄 로치 감독의 연출방식이 노동현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하고 있는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서도 켄 로치 감독의 연출 특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 속에서는 열악한 노동현실을 미화시킬 만한 극적인 전개가 없고, 감독은 리키라는 평범한 인물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단순히 조명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대중이 주인공을 우리 옆에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로 받아들이게끔 하는 영화적 장치입니다.

3.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 대한 감상평

미안해요-리키-감상평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배송 업무를 하다 다친 리키가 병원도 가지 못한 채 다시 밴을 끌고 출근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즉, 영화는 자본주의 속 노동소외나 그로 인한 가정 내 불화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 채 엔딩을 맞이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영화의 마무리는 문제가 해결되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일반적인 영화랑은 현저한 차이점을 지닙니다.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고, 대중의 생각이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오게끔 하는 연출은 켄 로치 감독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요소입니다. 그는 “영화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며, 사회적 문제를 대중에게 알려주는 역할에 그친다.”라고 말합니다. 켄 로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는 대중들이 영상을 단순한 재미로 소비하게 한다고 생각하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영화를 끝냄으로써 대중이 사회적인 문제를 깨닫고 생각해 보게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가 사람들에게 어두운 감정만을 남겨두고, 대안과 희망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저는 켄 로치의 이러한 연출이 사회적으로 꽤나 유의미 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는 같은 공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더라도, 내가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해 바라볼 기회가 현저히 적습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등의 매체를 통해 사회 속 문제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지요.

미안해요-리키-전태일

저는 켄 로치 감독의 담담하고 현실적인 엔딩이 오히려 관객이 사회 문제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대중이 현실의 문제점을 자각하게 된다면 추후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목소리도 들어볼 수 있을 것이고요. 53년 전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한 청년이 외친 그 목소리가 우리 노동운동사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켄 로치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영화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영화는 단순히 이를 조명하고 대중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지요. 결국, 영화가 보여준 현실을 자각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것은 영화를 본 우리, 바로 대중의 몫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