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한 라짜로에 대한 해석과 감상

오늘 소개할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실화와 우화를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 연출이 특히 인상적인 작품으로, 초현실적 존재와 인물들 간의 다른 시간성을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입니다. 목가적인 풍경과 대비되는 우화적인 줄거리가 저에게는 참 신선하게 다가왔는데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맹점을 순수한 시각으로 날카롭게 포착했습니다.

참고로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며, 씨네21에서 봉준호 감독이 선정한 2010년대 영화베스트 10 중 하나입니다.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스크린 속에 병치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 고도화되는 착취의 행태를 보여줍니다. 평소 일반적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연출과 우화적 요소를 즐긴다면 꼭 한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영화 행복한 라짜로에 대한 해석과 감상

1. 영화 행복한 라짜로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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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연출이 관객의 시선을 확 사로잡습니다. 우선 영화는 시간이 멈춘 듯한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외부와 단절된 이탈리아의 시골마을 인비올레타에서는 약 50여 명의 소작농이 후작 부인의 담배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소작제가 금지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방적인 노동 착취를 당하며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학교조차 갈 수 없고요.

영화의 주인공 라짜로른 소작농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청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라짜로를 종처럼 부려 먹습니다. 후작부인이 마을 사람들을 착취하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라짜로를 착취하는 일종의 계층구조가 일상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라짜로는 이런 현실에 불만을 표하기는커녕 항상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합니다. 마치 우리가 어렸을 적 보았던 바보 ‘이반’과 같은 모습입니다.

영화의 극적인 전개는 후작부인의 아들인 탄크레디가 마을로 요양을 오면서 펼쳐집니다. 라짜로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가짜 납치극을 벌여서 마을을 탈출하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개입되면서 후작부인의 노동착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서 마을 사람들은 대도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지요.

영화의 전반부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전근대적 착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영화의 후반부는 우화적인 요소와 시공간을 초월하는 연출을 통해서 더욱 현대화되고 발전된 착취의 실태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공간이 농장에서 공장으로 바뀌었을 뿐 마을 사람들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은 절대적 선(善)인 라짜로의 시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후작부인 밑에서 마름 격으로 일하던 니콜라가 일자리 중개인이 되어 다시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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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의 극적 효과를 더하는 장치는 바로 시간의 왜곡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서 늙어있지만 라짜로는 젊은 모습 그대로인 채로 그들을 맞닥뜨리게 되는데요.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라짜로의 모습에 신적 아우라까지 느껴집니다. 조금 과장하면 바보처럼 착한 라짜로와 어쩌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일지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영화를 보면 감독이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영화 행복한 라짜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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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마술적 사실주의 연출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라짜로는 종교적이고 초현실적 존재로서 일반적인 시간세계를 초월하는 인물이지요. 영화 속에서 라짜로는 계급사회 속에서 가장 하층민으로 사람들의 끊임없는 요구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라짜로의 노력을 대우해 주지 않지만, 그는 계속해서 선의를 베풀며 살아갑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늑대는 라짜로에게만 보이는 상징적인 캐릭터로 후반부에 도시를 떠나는 존재입니다. 늑대가 떠나는 장면은 이제 더 이상 라짜로 같은 존재가 도시에 없다는 점을 암시하는 장면이지요.

즉, 영화는 라짜로의 삶을 통해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계급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늑대의 이동을 통해 라짜로 같은 존재는 사회에 없음을 시사합니다. 나아가 영화는 라짜로 같은 선한 인물이 존재해도 자본주의 속의 부조리함을 제거하는 것이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지요.

3. 영화 행복한 라짜로에 대한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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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시청한 뒤 제목을 보면 ‘행복한’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라짜로에게 어울리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듭니다. 영화 제목이 『행복한 라짜로』인 이유는 여러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먼저, 주인공인 라짜로의 시선에서 ‘행복한’이라는 단어는 라짜로가 스스로를 행복한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나온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요. 라짜로는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투명하고 중립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자본가, 소작농, 하층민 모두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인물로 바라보고 도움을 주지요. 다른 인물들에 대한 의심이 없는 라짜로는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며 살아가는 일이 옳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다른 인물들을 관점에서 제목을 보면 ‘행복한’은 인정받지 못해도 모두에게 배려하는 라짜로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작 부인이나 마을 관리자는 라짜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인데요. 이런 사람들은 라짜로가 이용 당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해서 선의를 베푸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그를 ‘행복한 라짜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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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행복한’은 대중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한 역설적 표현일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라짜로의 삶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제목이 ‘불행한 라짜로’였다면 관객들은 이에 대해 당연히 수긍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목을 ‘행복한 라짜로’라고 지음으로써 대중들은 그가 과연 행복하였을지에 대해 고찰해 보게 됩니다. 나아가 관객은 라짜로가 처한 자본주의 속 환경에 대해 생각해 봄으로써 감독이 숨겨놓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 사회가 반드시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는 과거에 존재했던 노예제가 현재 자본주의 속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형태로 녹아들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라짜로 같이 선의를 베풀며 살아가는 선한 인물이 현대 사회에 존재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 존재를 믿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할까요? 『행복한 라짜로』는 우리가 불의가 가득한 사회에서 ‘행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주인공들 중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